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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철

Dream vividly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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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8. 27. 18:18

여자는 취하는게 아니라 알아가는 것입니다.

최초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이후 하와를 지으실 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넵킨전도, True Story"를 지은 James Jeoung 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돕는 베필'의 의미는 히브리어로 '구원하다'와 '강하다'의 뜻을 지닌 두 단어의 합성어이며, 즉 하나님은 여자를 아주 중요하고 권위있는 존재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알 수 있는 것 중에 창세기 4:1에서 아담이 하와와 동침했다고 할 때 이 의미가 히브리어로는 '알았다' 즉 친밀감 -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하는 것을 알아가는 단어였다고 합니다.
단지 타락이후에 여자가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창세기 6:2에 보면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을 때 상대방을 아는게 아니라 취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한때 돕는 베필이었던 여성들이 장신구나 그림자로(라멕의 아내인 아다와 씰라의 이름의미가 당신구, 그림자였다고 합니다) 전락하여 남자들에게 취함을 당하는 꼴이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대할 때는 함부로 하지말고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본래 의도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축복하는 동등한 관계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그랬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깊은 생각을 알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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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8. 27. 17:41

사랑을 줄지언정 받는 것을 강요하며 안됩니다. - 자유의지에 대해

'자유의지'에 대해서 James Jeoung는 쓴 '냅킨전도(True Story)'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문요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권한을 주셨는데, 선을 통해서 복을 받든 악을 택해서 저주를 받든 그것은 우리의 권한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이 늘 잘 되길 바라며 상대방을 돕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합니다. 다만 대가로 바라는 것은 오로지 상대방의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강요할 수는 없죠. 아무리 상대방을 많이 사랑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를 강제로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거죠.
하나님도 나에게 강제로 어떤 것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동하게, 즉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감동을 받아서 자신을 사랑하길 기대하실 뿐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침범하시지 않죠.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기보다는 조정한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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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5. 24. 12:13

현재의 위치가 아닌 방향, 열정

구약을 읽다가 다윗의 이야기를 보고 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기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아껴야 되는데 다윗은 왜 그럴까? 그러면서도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넌센스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야곱도 마찬가지로 장자권을 얻기위해 사기극을 벌였었다.

교회에서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들, 도덕적이나 인격적으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되는 자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병욱 목사님은 '현재의 위치가 어떠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어떤가'를 이야기 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한다. 

진짜 신앙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 보다 하나님을 향해 회개의 마음을 품은 세리와 창기에게 더 우호적이셨다고 한다.

나에게는 이런 열정이 있는지 되짚어 보게 된다.


좋은 것이 머무르는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방향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앙이란, 방향성의 문제이다. 위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다윗은 범죄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그런 마음이 없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복을 열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에서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진짜 신앙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힘에서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해주고 싶지만 못하는 안타까움, 거기에서 진실이 나온다. 돈과 권력이 다가 아니다. 상대를 움직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from "자신감", 전병욱, 규장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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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1. 29. 06:10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_The law of the Spirit

이젠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who gives life has set you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Romans 8:1- 2]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인간처럼 죄를 쫒지 않고 을 쫒아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humanity to be a sin offering...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sinful nature but according to the Spirit [Romans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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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1. 28. 06:07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율법은 죄를 알게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선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나니.. - 로마서 7:7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행동 중에 죄를 짓고 있는 것을 알게 하며, 심지어는 죄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합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 로마서 7:8


그렇다면 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있는 죄가 원하지 않은 것을 하게 합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로마서 7:16-17


내 마음은 그럴 생각이 없으나 내 몸이 죄의 법을 따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니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로마서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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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10. 1. 27. 05:58

죄의식보다는 의로운 것을 찾아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내가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죄의식을 버리고 이제는 의로운 것을 찾아 생각하고 행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는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우린 죄없다 하셨으니까요.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로마서 6장 6-7절]

For we know that our old self was crucified with him so that the body ruled by sin might be done away  with, that we should no longer be slaves to sin 
because anyone who has died has been set free from sin
[Roman 6 6-7]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과 믿은 후에 다른 점은 더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죄로부터 자유하셨기에 나 또한 더이상 육신의 여러 바라는 것 때문에 죄인이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게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장 11절]

In the same way, count  yourselves dead to sin but alive to God in Christ Jesus.
[Roman 6 11]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앞에서는 산자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선,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이 되었으니 항상 의롭게 (righteousness)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2절-23절]

날마다 회개하여 죄의식은 이제 떨쳐버리고 의로운 것을 실천하는데에 고민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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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09. 12. 14. 13:16

여호야다의 신실함

역대하 23장의 내용입니다.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운다.
하나님의 성전을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게 하고,
대적했던 아달랴를 성전 밖에서 죽였으며, 우상인 바알 신전을 허물고 우상들을 깨뜨리고 바알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 후 여호와의 성전을 지키는 일을 레위사람들인 제사장에게 맡겼다. (역대하 23장)


여호야다의 신실함이 참으로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아스의 시대를 모든 사람이 다윗왕조가 멸절돼 하나님의 약속이 소멸되었다고 생각하는 암흑의 시기라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여호야다는 어린 왕을 - 7살에 왕으로 즉위 - 성전에서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게리 인리그/트리니티복음주의자유교회 담임목사)

이렇게 귀하게 자란 요아스 왕은 안타깝게도 유다 8대 손이며,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때에는 왕으로서 잘 하다가, 그가 죽고난 후에는 우상을 섬겼다고 합니다.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요아스_(유다_왕국) )


궁금한 점은 요아스의 전 왕이 아달랴라고 합니다. 이 두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집니다. 아직 전 이야기를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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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09. 12. 1. 00:03

직장상사와의 비전공유 및 동기부여 and 상황을 통한 성품 개발

요즘 직장에서 일하기가 좀 힘듭니다.

왜냐하면 첫때는 상사와의 소통이 안되기 때문이며, 둘째는 비전을 함께 나누거나, 어려운 일을 함께 해쳐나가거나 또는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엔 상사가 이런 일들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도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저를 단련하기 위한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합니다. 아랫사람이지만 조금 버릇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더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더 부족하거나 아님 게을러서 내가 마땅히 해야하는 일도 안하고 있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지금이 내가 더 열심히 해야할 때인지를 깨우치게 하시고 채찍질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습니다.
아니면 여기서 내 미래, 비전을 이루기보다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셔서 그런건지도...

다만 지금 내가 해야할 것이라고 분명히 믿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영적으로 더 민감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더 나아갈지 아니면 다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인지를 알기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오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이용해서 우리의 성품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시려 합니다.
요셉, 다니엘, 예레미아, 바울 등이 겪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되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 배웁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왜 일어났는지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닥친 어떤 문제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뜻 밖의 사건들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적으로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by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chapter 25, 목적이 이끄는 삶, 릭 워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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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09. 11. 11. 13:56

탁월한 시간 관리를 위한 10가지 권고

11월 생명의 삶에 수록된 글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라" 에서 "탁월한 시간관리를 위한 10가지 권고"를 이야기 합니다. 그중에 몇가지를 인용하여 적어봅니다.

1.당신 삶의 목적들을 알라.

하루, 일주일, 일 년, 그리고 일생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만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없기 때문이다.


2.매일 저녁에 다음 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작성하라.

그러면 더 숙면을 취하게 되고,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더 의욕적으로 일어나게 되며, 하루종일 시가을 더 잘 관리하게 될 것이다.


3.당신의 의무와 책임들이 독촉하기 전에 일찍 일어나라.

적어도 15분에서 30분간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가지라.


4.인간관계를 귀중한 투자로 여기라.

사람들을 코치하면서 무엇보다 큰 후회는, 지난날을 돌아볼 때 '부적절한 사람들과 너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라는 사실을 때달을 때 왔다.


5.대충대충 하려는 마음을 버리라!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한다.


Taken from Success is not an accident by Tommy Newberry,

번역 유정희

11월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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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2009. 11. 10. 21:29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한다

"권태선 칼럼 - 내 삶의 주권찾기" 라는 한겨레 신문 칼럼을 보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목적을 찾고 이루면 살아가는데에 생각이 많았던 요즘, 간만에 좋은 글을 찾았네요.
무엇이 되는 것에만 목표를 두고 살아가다보면 그 것, 위치가 된 후에는 상실감이 많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권태선 선생님의 글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글을 인용합니다.

삶의 주권을 회복한 우리가 만들어갈 사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겁니다. 아이들은 ‘일단’ ‘그냥’ 공부하는 게 아니라, 꿈을 먼저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게 되겠지요. 부모들은 아이들을 무작정 무한경쟁에 내모는 대신 좋은 교육을 찾아나서게 될 거고요. 남성들은 자신의 일을 통제하면서 좀더 관계지향적인 삶을 모색할 수 있을 테지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from 권태선 칼럼 - 내 삶의 주권찾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69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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